베푸는 삶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0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에스더 9:22
언젠가 누구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그 말이 내맘에 뿌리를 내리면서 평소에 생각해 오던 나의 생활 철학을 더욱 공고히 해 주었읍니다. 그분이 한 말은 바로,”새 옷을 사 입으면 몇일이 행복하고, 새 차를 사면 몇 달이 행복하고, 새 집을 사면 몇 년이 행복할 수있다. 그러나 베푸는 삶을 살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었읍니다. 이 말은 바로 성경, 사도행전 20장 35절, 주님의 말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느니라.”의 진실성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베푸는 삶이 평생 행복의 비결이다.”는 말은 이 세상의 교훈이 아니라 불변의 성경, 진리의 말씀입니다.
요즘 세간에 불교의 한 지도자이신 법정스님의 타계에 즈음하여 그분의 생전의 가르침에 많은 감동을 받고있읍니다. 특히 “무소유”란 그분의 정신에 대해 많이 회자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원리가 그것과는 너무 동 떨어진 삶들을 살고 있기에 더욱 뚜렷하게 우리들 마음에 새겨지기 때문일 겁니다. 그 분의 글 중에, “부자가 되려하지 말고 베푸는 자가 되도록 하라.”는 글 귀는 베품의 삶의 행복을 역시 말씀하고 있읍니다.
기회가 있어 어떤 분과 이러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 중, 그분이 저에게 말씀하기를, “아니 가진 것도 없는데 무얼 가지고 베푸느냐?” 고 다소 마땅치 않은 듯한 반응을 해 왔읍니다. “아니 그 스님은 혼자 사셨던 분이기에 그렇게 말 할 수 있을른지 모르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살 수 없지요.”라고 계속 말을 이었읍니다.
저는 최근에 마야 안젤루의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의 글 중에 ‘베푸는 사람’이란 짧막한 시를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읍니다. 그곳에서 베푼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았읍니다. 즉 그것은 상냥한 미소 한번, 따뜻한 말 한마디, 앉았던 자리에서 옆으로 조금만 비켜 앉는 것,… 등이라고 했읍니다. 내 손에 가진 돈이 없어도 옆으로 조금 비켜 앉으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옆에 있는 자리에 앉을을 수 있고, 어느 건물로 들어 갈때 내가 연 출입문을 조금만 붙잡고 있으면 뒷 사람이 편안히 들어 올 수있는 것등, 즉 누군가에게 배려하는 마음이 바로 베푸는 삶이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인생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가요? 아니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있지 않을가요? 사실 우리가 이런 마음만 있으면 정말 우리가 물질로도 남을 도와야 할 처지가 된다면 우리의 손에 그 물질로 하나님이 쥐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실천되지 못하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 권고하고 있읍니다. 저는 요즘 구약 성경 에스더서를 읽는 중, 인생 역전의 극적인 대목을 읽고 감동을 받습니다. 유대 백성이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 당시 페르시아의 총독 하만의 모함으로 유대 백성들이 모두 사로 잡혀 죽어야 하는 처절한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도리어 하만과 그의 가족들이 처절한 처형을 받는 그러한 참사가 일어 났읍니다.
그결과로 유대인들은 화를 면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복수할 수 있는 권한을 왕으로 부터 허락 받아 반대로 된 이야기입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잔치를 베풀고 서로 선물을 나누어 가지는 명절, 부림절을 지키도록 했는 데 이때 한가지 더 추가한 사항은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를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남다르게 하나님의 그 배려의 마음을 깊히 생각하고 감사함을 느꼈읍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가난한 사람들이 늘 자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그 힘든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 속에도 항상있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에베소서 2장10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소위 마음 좋은 사람들, 또는 착하고 신앙적인 소수의 사람들 만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태어 날 때 부터 운명적으로 남을 돕는 것으로 태어났다는 것입 니다. 왜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 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나의 운명(destiny) 은 무엇인가” 저의 운명은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다 선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Destiny란 영어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처음 부분에는 그저 “운명, 숙명,또는 필연”이라고 되어있지만 좀 더 자세히 사전의 아랫 부분으로 내려가면서 찾아보면, “하늘의 뜻” 이란 말도 있는데, 신앙인으로 보면 이것은 막연한 사람들의 살아갈 운명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Design해 주신 착한 일을 하는것으로 해석 할 수있는데, 특별히 우리들의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귀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우리가 해야 할 착한 일을 사는 것이 신앙적 운명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저의 이러한 운명을 조금이나마 살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앞으로 정말 그분이 저에게 가장 귀하게 디자인 해 주신 그 운명을 찾아 실천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